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 2013)은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책이다. 수많은 사료를 정교하게 편집하여 20세기 유럽의 문화사와 지성사를 마치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써내려간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300명이 넘는데 그중 프란츠 카프카는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책 속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우유부단한 연애편지를 쓰는 인물이다. 편지의 수신자는 카프카와 두 번 약혼하고 두 번 파혼한 펠리체 바우어. 카프카는 끊임없이 칭얼대고 걸핏하면 말을 바꾼다. 카프카를 대하는 저자의 시선은 때로는 조롱 같고 때로는 연민 같다. ‘찌질하기’ 짝이 없는 카프카의 연애는 가히 ‘문제적’이다. 독자로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의 편집자였고, 책을 만드는 내내 이런 카프카가 각별했다.


뉴디렉션스(New Directions)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출판사다. 이 출판사에서는 영어권 책들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책들 또한 꾸준히 번역 출간한다. 주로 현대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문학서인데, 일관성이 엿보이는 도서목록이 이 출판사의 뚜렷한 색깔과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접근할 수 있는 언어에 제한이 있는 편집자로서는 이런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기획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의 영어판 또한 뉴디렉션스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은 ‘Is that Kafka?’. 단순하지만 강렬한 표지에 얹힌 제목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원저는 2012년 독일 피셔(Fischer) 출판사에서 나온 『이 사람이 카프카라고?Ist das Kafka?』라는 책이었다(참고로 『1913년 세기의 여름』 또한 같은 해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리뷰를 훑어보니 책의 내용이 흥미진진했다. 카프카 독자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었다. 방대한 카프카 전기를 쓴 저자의 이력 또한 책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주었다. 전문적인 검토를 거친 뒤 바로 판권 계약을 맺었다.


일기, 편지, 엽서, 사진, 노트 등 얼핏 보면 시시콜콜하고 지엽적인 자료들 속에서 재발견하는 카프카의 면모는 그 자체로 매우 문학적이다. 책에 실린 99편의 짧은 글들을 읽다보면 카프카가 자신의 길지 않은 삶 자체를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이 책을 나름대로 유의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다만 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읽기가 다소 고역일 수 있다!). 물론 카프카를 깊이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축복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돌아보건대 예전에 플로리안 일리스의 책을 편집하면서 내가 카프카를 각별하게 여긴 것 또한 자신의 연애를 희한하고 불행한 방식으로 써나가는 그 독특한 문학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1913년 세기의 여름』 ‘감사의 말’에서 저자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준 몇몇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프란츠 카프카에 관해서는 라이너 슈타흐에게 감사한다’라는 구절에 주목하자. 라이너 슈타흐는 바로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 또한 뒤늦게 알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내가 만들어 펴낼 운명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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